매향리 농섬에 다녀와서...
뜨거운 햇살을 맞으면 매향리 농섬을 다녀왔습니다. 미군의 쿠니 사격장.
50년간 폭격이 이뤄졌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매향리
쿠니 사격장이란 이름도 고온리를 자신들의 발음으로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군요.
그렇게 평화로웠던 마을이 6.25 전쟁당시 미공군의 사격연습을 시작으로 50년의 상처로 얼룩졌습니다. 자신들의 재산권을 빼앗긴 주민들은 무시무시한 군사정권 시절에 한마디 말도 못하고 참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시간에 구애도 없이 폭격훈련이 이뤄지고 태평양 근해의 미군의 사격훈련이 이뤄지던곳.
생활이 이뤄지고 안개가 없어서 접근고도를 낮게 하면서 사격훈련을 할 수 있어 최고의 훈련장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을 할 수 있어서 미군이 포기 할 수 없었던 훈련장.
그 갯벌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아름다운 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햇살이 뜨겁고 바람이 불어오는 매향리.
이제는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나서 시민들의 힘으로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푸르름의 상징이라고 했던 농섬도 이제는 반토막만 남아서 그 고통의 순간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더욱 푸르게 살아나길 기대하면서 ...
아직은 제일 윗부분의 죽어 있어서 나름 치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곳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애정으로 자연의 힘으로 치유될 것입니다. 우리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유산입니다.
매향리 연혁
1951년 한국전쟁 중에 미군이 매향리 앞 해안 1.6km 떨어진 농섬을 해상표적으로 삼고 사격을 시작.
1954년 본격적으로 사격장 주변지역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
1955년 공식적으로 매향리 사격장(쿠니 사격장) 설치.
1968년 농섬 중심으로 반경 약 914㎡의 연안해역과 해안지역 38만평을 수용
1979년 연안해역을 추가 수용
1980 해안지역을 추가 수용. 현재와 같은 규모의 사격장 갖춤.
1988년 6월 14일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 피해주민 대책위원회 결성
1988년 7월 4일 614명 세대주 연명으로 청와대, 국방부, 경기도청에 피해대책 요구 진정서 제출
1989년 3월 팀스프리트 훈련 중 피해주민 700여명 3주간 육상, 농섬 사격장 완전 검거 농성
1994년 12월 14일 불발탄 폭발사건으로 198채의 가옥 균열피해 배상요구 및 대책촉구 위해 미군기지 앞 3개월 천막농성. 한미 배상심의위원회로부터 3억 5천만원 받음.
1998년 2월 27일 주민대표 전만규 외 14인이 국가상대 폭격소음 손해배상소송 제기
2000년 5월 8일 주민 6명이 다치는 매향리 오폭사건 발생
2000년 6월 2일 사격장 철폐 기자회견, 폭격훈련 알리는 황색 깃발 찢은 전만규 대책위원장이 군사시설보호법위반, 기물손괴 혐의로 구속
2000년 8월 18일 국방부 육상 기총사격장 폐쇄 발표
2001년 4월 11일 1심 재판에서 주민대표 전만규 외 13인 원고 일부 승소 판결
2001년 8월 13일 주민 2천222명 국가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소송 제기. (이후 149명 추가, 현재 원고인단 총 2천371명)
2002년 1월 9일 주민대표 전만규 외 13인에 대한 항소심 원고 일부 승소 판결
2002년 2월 7일 피고(대한민국) 대법원 상고
2004년 3월 12일 대법원 원심 인정 확정 판결
2005년 8월 12일 매향리 사격장 완전 폐쇄
2005년 8월 매향리 주민들 미군 철수지역 '평화생태공원' 조성 요구
2005년 9월~2006년 2월 화성시 외부용역 통해 '평화생태공원' 조성 확정
출처 :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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